능소화 이야기
능소화입니다.
중국이 원산지로 우리나라에는 주로 남부지역과 수도권에서 관상용으로 심는 귀화식물입니다.
꽃 색이 황금빛이며 형태가 안정되고 아름다워 옛날에는 양반집 뜰에만 심을 수 있었기에 양반꽃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 꽃이 양반집 뜰에만 심었다는 것은 전해오는 속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꽃을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거나 눈이 먼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와서는 꽃가루를 확대하면 갈고리가 있는데 이것이 눈에 들어가면 다치게 한다는 다소 설득력 있는 근거가 붙어 다닙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은 꽃가루에 달린 갈고리와 같은 작은 이물질에는 안전하고 상처도 입지 않습니다.
이는 양반들의 전유물로 생각되는 꽃이 서민의 손에 닿지 않기를 바라는 일종의 사회적 금기라 할 수 있습니다.
양반집 뜰에나 심을 수 있던 꽃이 어느날 종이나 하층민의 담장에 자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관청이나 사대부 집에서 사람을 보내 주인을 끌어들이고 곤장을 때렸을 것 같습니다. 혹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금기가 꽃과 함께 유래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울러 이 꽃이 궁궐에 피던 꽃이라는 근거가 전설로 전해옵니다.
소화라는 궁녀의 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어느 궁궐에 소화라는 아름다운 궁녀가 있었는데 우연히 임금의 눈에 띄고 그날 밤 성은을 입게 됩니다.
그녀는 빈의 자리에 오르지만, 임금은 다시는 그녀를 찾지 않았습니다. 임금에 대한 연정과 기다림에 지친 그녀는 병이 들어 죽었고 임금을 처음 만났던 담장 아래 묻히게 되었습니다. 이듬해 그녀가 묻힌 자리에 이 꽃이 돋아나 담장을 타고 올랐습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혼이 꽃이되어 죽어서도 임금을 기다린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꽃에는 아름다운 만큼 슬프거나 애처로운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꽃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그만한 희생이 있어야 하며, 아름다움과 슬픔은 대칭구조가 되어야 사람의 마음을 울립니다.
꽃은 더 곱게 피어나고 아름다움에 대한 정당성이 부여됩니다.
번거로운 우리 삶에서 벗어나 꽃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일탈행위로 간주되어 죄의식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꽃이 슬픔과 좌절을 거름으로 피어났다면 꽃을 바라보는 죄의식은 덜 수 있습니다.
그래서 꽃은 죽은 자의 무덤 위에 피는 경우가 가장 흔합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다 죽은 처녀의 무덤에 피어났다는 이야기가 가장 전형적의 꽃의 출생 기록부입니다.
핍박받는 하층민의 꿈이 극복할 수 없는 현실에서 좌절되고 죽어서는 꽃이 된다고 믿습니다.
구구절절한 삶의 스토리는 한 송이 꽃으로 단순화 되고, 아름다움 맞은 편에 앉은 우리의 운명과 한계를 보게 됩니다.
이는 우리의 꽃 이야기 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든 나라의 꽃 이야기에 등장하는 정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칠월의 햇살에 능소화가 만발하였습니다.
비록 한순간 짧은 사랑이었지만 님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죽어서도 곱게 피어 임금님을 기다리고 있고,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능소화는 우리가 연인에게 기대하는 자신만을 위한 끝없는 사랑과 기다림을 투영한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피고지는 꽃 이야기를 엿들은 책이 있습니다.
더 많은 얘기는 '이게 무슨 꽃이에요'-봄, 여름, 가을편. 리디북스에서 검색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