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봉평에서는...
풍경/마음에 담은 풍경 2009/09/06 20:48 blue

일교차가 심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교차가 심한 날, 특히 저녁부터 몰려오는 습기 가득한 공기가 민감한 피부에게 포착되었다면
그 다음 날 새벽에는 안개가 시야를 가릴 것은 불보듯 뻔한 일...
그런 날이 되면 새벽안개가 복잡한 배경을 모두 감추어주어 아릿하게 느껴지는 강가나 산골 풍경이 무척이나 보고싶어집니다.

아직 우주여행 후유증 탓에 회복이 덜 되어 일주일을 보내기가 버거웠지만 오랜 만에 안개낀 풍경을 망막에 가득 담아 놓으면 좋겠다 싶어 전날밤부터 새벽 여행을 모의했습니다.
원래 주말이면 이른 아침에도 차가 밀리는 영동고속도로인지라 깜깜한 꼭두새벽에 출발하였지요.

봉평에 도착하니 해가 솟아 오를 시간이 거의 되었습니다만, 짙은 안개가 봉평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산을 가로막고 있어 햇빛은 범접을 못하였습니다.
몇 년 전이던가... 효석문화제기간에 잠시 다녀왔던 봉평. 그날은 비가 주룩주룩 내려 주막집에서 메밀전병에 막걸리 한잔에다 메밀국수만 말아먹고 왔었지요(눈요기는 하나도 못하고...).

오랜 만에 다시 온 봉평.
아직은 어둑한 기가 다 가시지 않은 길을 달리는데 희끗희끗한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늦가을에 추수가 끝난 논에 내린 무서리가 주는 느낌같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널리 퍼진 희끗한 풍경에 얼른 차를 멈추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둑한 날씨가 점점 밝아 올 때까지 그 풍경을 응시했드랬습니다. 저 건너편 안개 때문에 나즈막할 것 같은 산등성이는 안개 물방울의 흐름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습니다.

아뿔사!
삼각대, 카메라...!!!
그제야 망막에만 담고 있었던 그 풍경을 CMOS에 담으려 후다닥 거렸습니다. 가끔 다른 곳, 다른 사람들, 다른 삶을 만나러 여행을 하는 건지, 카메라에 그것들을 담으려고 여행을 하는 건지 분간이 안갈 때가 있습니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말을 누가 만들어 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득하게 풍물을 보고 느끼면서 삶을 뒤돌아 보기도 하고, 다른 삶을 내 삶으로 끌어 당기기도 해야하는 그 시간들을 퍼뜩퍼뜩 카메라로 사진 찍고는 서둘러 다음 코스로 향하는 그런 행위로 반복되고 마는 것입니다.
삼각대와 카메라를 가지러 되돌아 오면서 느낀 찰나의 상념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시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저 멍하니 바라본 그 풍경들, 망막에 새겼지만 기억에 깊이 저장되지 않을 그 풍경들에 저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알 수 없는 서글품을 섞어 비벼 묵었다는 것입니다.
날이 새기 시작할 때 찍은 사진들이 꽤나 되는군요.
문학제가 열리는 장소와 떨어진 메밀꽃밭에서 시간을 거의 보내고 축제 행사장 근처로 향했습니다. 축제가 보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축제에 참여해 보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그냥 몇 년 전 비가 내려 머물렀던 그 좁디 좁은 주막집 방에 들어 다리나 쉬어갈 요량이었습니다.

그 주막집은 시간이 일렀는지 인기척이 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건너편 군에서 조성해 놓은 것으로 기억하는 그 메밀밭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삼각대를 펴놓고 줄을 이어 서있는 카메라맨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풍경을 담을 수 없음에 망연자실하여 한자리에서 계속 서있습니다.

알고보니 여행 온 여러 가족들이 그 풍경 속에 풍덩 빠져서 나올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그 풍경 속에서 그들이 빠져나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안개가 아직 짙게 남아있습니다. 그렇지만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갑자기 시장기가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카메라 메고 두어시간 걸어다녔던 그 시간이 아직은 무리였나봅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역시 카메라만 가지고 동동거렸습니다.
지버릇 개 못주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