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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청산도를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전라남도 완도군까지 발품 팔아야 하는 것이 첫 번째. 완도군에서 청산도행 배로 갈아타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 청산도를 밟고 싶어 하는 이들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 세 번째 이유다. 그래서 첫배를 타기 위해 어두운 밤을 뚫고 서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완도군에 도착, 잠깐 차에서 눈을 붙이고 첫배 출항 시각 전에 완도여객터미널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지 못했다. 새벽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매표소에서 이어진 줄이 터미널 입구 밖까지 서 있다. 줄이 시작된 매표창구를 확인했지만, 청산도행 줄이 확실하다. 자가용전용 매표소 앞은 빽빽하게 대기한 차량으로 만원이다. 청산도의 인기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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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즐기는 남해는 일품
그렇게 기다린 시간이 약 4시간. 11시20분 청산도행 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4시간이 넘도록 대기하느라 지칠 법도 한데, 갑판에는 사람들이 서서 바닷바람을 즐긴다. 바다안개가 짙다. 그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섬들이 하나둘 옆을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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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려면 10분이나 남았지만, 여객선 출구로 모이는 사람들
뱃머리가 향한 곳의 섬이 점점 가까워진다. 청산도다. 양식장, 어선들이 보인다. 어렴풋이 보이는 마을과 그 뒤로 펼쳐진 다랭이논도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이 하나둘 여객선 출구 쪽으로 모이고, 청산도의 가까워지는 모습에 웃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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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등대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해 도청항에 도착, 출발 후 40여 분이 지나 여객선이 청산도에 연결됐다. 먼저 청산도를 관광한 사람들이 여객선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다. 그 길이로 보아 이번에 타지 못할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인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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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길 2코스 ‘읍리’를 걷는 여행객
청산도의 첫인상은 참 시끌벅적하다. 특산물 판매점, 수산물 식당 등이 약 300m 길이에 이르는 거리 한편을 가득 메웠다. 이곳이 슬로길 1코스 항길이다. 청산도의 입구이면서 출구이기도 해, 오가는 인적이 제일 많다. 그리고 이어지는 동구정길은 서편제 촬영지, 봄의왈츠 촬영장을 볼 수 있는 구간이다. 이곳 또한, 촬영지 명소를 찾아온 관광객들로 북적북적하다. 슬로길 1코스(항길~동구정길~서편제길)를 제외한 청산도의 길목은 대부분 한산한 편이다. 도청항에서 반대편에 자리한 항도로 갈수록 인파가 드문드문하다.
도보로는 도청항과 항도 왕복이 어렵다. 버스를 이용하자. 상서리부근 돌담길이 시작하는 곳까지 버스가 운행 중이다. 항도부터 찍고 천천히 도청항으로 걸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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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항에서 출발하는 청산 마을버스를 탔다. 작은 고개를 넘자, 바다가 섬에 안긴 듯한 모습의 어촌이 보인다. 그 오른쪽에 항도가 있다. 내리막길인데다가 풍경도 좋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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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즐기며 내려오면 신풍마을이다. 바다로 향하는 2차선 도로 옆에 꽃이 제대로 익었다. 걷는 맛을 돋운다고 해야 할까. 멀리 바다가 보이고 옆으로 작은 산맥이 시작된다. 그 중심에 자리한 마을을 지나고 있다. 발걸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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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갯벌이 펼쳐졌다. 신흥해수욕장이다.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이 찾아왔을 정도로 조망권이 으뜸이다. 갯벌을 바라보는 위치에서 2시 방향이 항도, 10시 방향이 상산포다. 갯벌을 왼쪽에 끼고 항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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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고개를 넘자. 항도가 눈에 들어온다. 좋은 명당에는 벌써 텐트가 쳐졌다. 자갈해수욕장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한낮의 땡볕을 참지 못하고 바다에 몸을 던진 아이들의 물장난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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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도로 이어진 방파제, 여기까지가 차로 올 수 있는 청산도의 끝이다. 이제 제법 가깝게 느껴지는 항도, 청산도와 방파제로 이어져 있을 뿐 외딴 섬이라고 불리는 게 어울릴 법하다. 도청항에서 본 유명관광지의 면모를 이쪽 부근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다. 국내 최남단 완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온 청산도, 그 섬의 작은 외딴 섬 ‘항도’의 슬로길로 첫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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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섬에 수림이 울창하다. ‘이게 뭐지?’ 돌에 파란색으로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화살표모양에 지명과 거리가 기재된 표지판을 보아오던 경험 때문일까. 낯선 사물 때문에 덜컥 무섭기까지 하다. 인적도 없고 길도 꽤 좁아서 조심성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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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섬이라고 은연중 만만하게 봤다. 오르막이 끝날 법한데 계속 이어진다. 해안가에서도 멀어진 듯 파도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새 울음소리가 정적을 간간이 깨준다. 조금 오싹하다. 걸어가는 도중에 숲에서 들리는 ‘바삭’거리는 소리 때문인데, 소름이 머리끝까지 바싹 오르는 소리도 난다. 항도의 슬로길을 갈 이들 중 스릴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라면 동행하는 사람이 있어야 완주가 원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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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길의 내리막구간, 경사가 급하다. 바다로 직진하는 능선을 타는 것이리라. 파도소리도 점점 선명해져 간다. 내려가는 길이라서 여유가 생겼는지, 안 보이던 야생화가 보인다. 그리고 바다가 펼쳐졌다. 감회가 새롭다. 이곳도 외딴 장소이기는 마찬가지지만 시야가 트이니 한결 맘이 놓인다. 건너편에 보이는 곳이 성산포다. 어선을 빌린 낚시꾼도 보인다. 항도는 갯바위 낚시에도 적합해 바다낚시 중인 사람들이 적잖이 눈에 띄었다.
남해의 해안가답게 바위틈 사이로 신기한 것들이 산다. 고동, 따개비, 홍합, 게 등이 각자 군락을 이뤘다. 또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을 통해 유명해진 거북손도 보인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할 차례다. 기대하시라. 예상치 못한 거친 코스가 기다리고 있으니. 일종의 사파리와 암벽등반이 공존한 곳이다.
거친 해안가를 지나야 한다 좋은 경치를 보려면 이런 바위 고개도 넘자
갯강구 그리고 여기서는 동행하는 이들이 넘치니 외롭진 않다. ‘갯강구’라고 불리는 절지동물이다. 걸을 때마다, 수백 또는 수천 마리의 갯강구들이 모세의 기적을 연출한다. 처음에는 징그럽고, 혹시나 공격할까 봐 약간 긴장했으나, 이것들의 습성이 가늠된 이후에는 뛰어놀기 바빴다. 사파리 누떼의 대이동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대이동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절대 놓치면 안 되는 파란색 화살표 모녀지간으로 보이는 여행객도 항도를 찾았다 해안가를 따라 걸으며 섬 안쪽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는지 눈여겨 봐야한다. 파란색 화살표 방향으로 들어서면 무섭지 않은(?) 오솔길이 이어진다. 약 10분 정도 걸으면 항도의 슬로길이 끝난다.
산책이라고 해야 할까, 모험이라고 해야 할까. 모호한 경계에 자리한 항도다. 외딴 섬 속 야생의 본 모습을 아는 사람에게는 산책이 적당하겠다. 하지만 그 외에 많은 여행자들이, 청산도의 ‘슬로우’ 테마 안에서 경험한 항도는 잊지 못한 모험으로 추억할 것이다.
※TIP
◎ 청산도 가는 방법
*자가용 - 호남고속도로 광산IC(13번 국도) - 나주 - 해남 - 완도대교 - 완도항 -청산도행 배편
*대중교통 - 고속버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 1일 4회 완도직행 광주, 목포 (고속)버스터미널 : 완도행 버스 이용
*완도 - 청산도 여객선 - 완도~청산도 07:00-17:10 1일 5회 운행 - 청산도~완도 07:00-17:00 1일 5회 운행 (날씨에 따라 운항시간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완도여객터미널 : 061-550-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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